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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요람안에는 청주 인근 지도가 여러장이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것은 청구요람 18층 12책 입니다. 청주가 저기 왼쪽 귀퉁이쯤에 보이시나요
아래에 해제를 같이 올립니다.

지도 위의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으로 충청북도 괴산군, 청원군, 진천군, 증평시와 음성군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이 지도 제작 당시의 행정구역으로는 지도의 가장 윗부분은 忠州牧에 해당하고 그 아래쪽으로 우측은 陰城縣, 槐山郡, 淸安縣, 淸州牧에 해당한다. 그리고 지도 좌측은 鎭川縣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지도상에 邑治가 표시된 陰城縣은 지금의 충북 음성군에서 소이면을 제외한 음성읍, 금왕읍, 삼성면, 감곡면, 대소면, 생극면, 맹동면, 원남면을 포함하는 지역에 해당하며, 邑治는 음성읍 읍내리 일대에 있었다. 槐山郡은 지금의 충북 괴산군 괴산읍, 소수면, 불정면, 사리면, 문광면, 칠성면 일대에 해당하며, 邑治는 괴산읍 서부리 일원에 있었다. 淸安縣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증평읍·도안면에 해당되며, 邑治는 청안면 읍내리에 있었다. 淸州牧은 문의면·부용면·현도면과 시동리 서남쪽의 가덕면을 제외한 청주시 전체, 괴산군 청천면, 천안시 수신면, 연기군 소정면의 소정리·운당리, 추동·주산동을 포함한 대전광역시 동구의 동북쪽에 해당되는며, 충청도의 兵馬節度使營이 있던 큰 고을로서 병영은 1651년(효종 2) 海美에서 이곳으로 옮겼는데, 지도상도 邑治 표시의 사각형 우측에 그 사각형 보다 작은 크기의 사각형 안에 ‘兵營’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邑治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북문로 일대에 있었다. 그리고 鎭川縣은 충청북도 진천군 대부분에 해당되며, 읍치는 진천읍 읍내리·교성리 일대에 있었다. 奎章閣 소장 ≪靑邱圖≫와 ≪靑邱要覽≫의 경우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기본적이 지도의 전체적 형태 및 축척이 서로 거의 같으며, 지도상에 표시하는 정보 또한 ≪靑邱要覽≫에 표기되어 있는 郡縣·鎭堡·歷史 등의 地誌적 내용의 기록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두 지도상의 산맥 有無로, ≪靑邱圖≫의 경우에는 산줄기와 물줄기 모두를 그리고 있지만, ≪靑邱要覽≫에서는 산줄기를 생략하고 물줄기만을 그리고 있으며, 그 결과 생긴 지도의 여백에 ≪靑邱圖≫에 없는 地誌적 정보를 담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邑治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이 지도상에 잘 나타나있다. ≪靑邱圖≫의 경우에는 郡縣의 크기에 따라 기호를 달리 사용하고 있다. 牧과 府의 경우에는 지도상의 淸州牧처럼 ‘□’를 , 郡의 경우에는 槐山郡처럼 ‘◇’, 그리고 縣의 경우에는 陰城縣과 같이 ‘○’ 기호를 사용해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淸州牧과 같이 邑治에 兵營이 설치되었을 경우에는 邑治 표시만을 하고 있다. 그러나 ≪靑邱要覽≫의 경우에는 일률적으로 邑治는 모두 ‘□’로 표시하고, 기호만으로 부족한 정보는 註記로 보충하고 있다. 즉 淸州牧의 경우 기호 위쪽에 ‘牧’이라고 표기하여 郡縣의 품계를 표시하고 있으며, 지도의 여백에 ‘戶口·田結·穀總·軍丁· 距京’과 같은 地誌적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靑邱圖≫와 달리 邑治와 兵營이 같은 경우에는 邑治 표시 옆에 다시 사각형을 그리고 ‘兵營’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양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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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부분만  확대한 모습입니다.  저도 한자세대가 아니라서.. 많이 어렵지만
그래도 새롭게 청주를 알아가고 있는듯 합니다.
Posted by cjc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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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요람 18층 13판 입니다.. 요기안에 청주가 있다네요..
좀 찾느냐고 힘이 들었습니다..  ㅎㅎ 왼쪽 하단 벽쪽으로 있는데 보이시나요?
청주는 항시 귀퉁이에 있나 봅니다 ^^;;

지도 위의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으로 충청북도 진천군, 청주시, 청원군과 충청남도 천안시, 아산시에 걸쳐 있는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의 행정 구역으로는 鎭川縣 , 淸州牧, 木川縣, 全義縣, 燕岐郡, 天安郡, 그리고 稷山縣이 걸쳐져 있다. 지도 중심에 郡縣 전체 모습이 이 版에 표시된 지역은 木川縣과 그 남쪽에 접해있는 全義縣이다. 木川縣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성남면·병천면·동면·북면에 해당하며, 邑治는 목천면 동리·서리 일대에 있었다. 하천과 산줄기 및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이 실제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그려져 있다. 읍치 주변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하천이 미호천의 지류인 병천천의 상류로, 지도상에는 ‘五方川’으로 표시되어 있다. 邑治의 동북쪽 경계선 부근에는 近東面이 표시되어 있는 이는 현재의 병천면 지역으로 1919년의 삼일운동 때 柳寬順(1904-1920) 등이 만세를 불렀던 ‘아우내장터 또는 아오내, 아내’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黑聖山 밑의 읍치 지역에는 현재 독립기념관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고개 이름은 우리말에 대한 한자 표기방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지도 왼쪽의 ‘大峙’는 우리말 ‘한치고개’에 대한 한자표기이다. ‘크다’는 뜻의 순우리말 ‘한’을 한자의 ‘大’로 바꾼 것으로, 이런 경우는 바로 밑부분에 나타나고 있다. ‘道里峙’는 ‘回峙’라고도 적는데, 고개가 휘돌아 감아 넘어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道里’는 순우리말을 한자의 음으로 표시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木川縣 남쪽에 접해있는 全義縣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전동면과 소정면의 대곡리·고등리에 해당되는 작은 고을로, 邑治는 전의면 읍내리에 있었으며, 고을의 鎭山은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서북쪽 5리에 있었다’는 甑山이다. 지도 왼쪽의 北面과 大西面에 있는 하천은 아산만의 삽교호로 흘러들어가는 곡교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읍내를 흐르는 하천은 미호천의 지류인 조천천이다. 지도에는 일부 오류가 보이고 있다. 조천천은 고을의 동쪽으로 흘러나가 청주와의 경계선을 이루며 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지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고, 마치 남쪽으로 직접 빠져 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雲住山을 청주와의 경계선에 있는 것처럼 표시한 것도 오류이다. 실재로는 읍치와 청주와의 경계선 중간 지점에 운주산이 있다. 그리고 全義縣의 서쪽에는 淸州의 越境地인 德坪面이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실재로는 공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木川縣과 全義縣의 이와 같은 모습은 두 지역이 한 장에 그려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海東輿地圖≫ 木川, 全義 지도에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山脈 표시의 有無와 註記의 有無 차이점을 제외하면 두 지도는 거의 같은 지도로 보인다. 그리고 奎章閣 소장의 ≪朝鮮地圖≫와도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朝鮮地圖≫에서는 ‘山方川’을 ‘方山川’으로 표기하는 것과 같이 정보 표기상의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全義縣에서 오류 마지막 부분은 ≪東輿圖≫와 ≪大東輿地圖≫에서도 그대로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 지도들간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양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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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보이시나요?  중간에 옮겨놓은 해제를 읽어보시면 지도가 좀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글세요.. 전 잘..
Posted by cjc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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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여도라는 고지도 16책 4열입니다.
청주는 항상 4면이나 4열에 나오나 봅니다. 그리고 항상 위치도 비슷하네요
오른쪽 아래 부근에 세로로 청주라고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차령산맥은 비록 고도는 낮으나 남과 북의 분수계를 이루며 우리 나라의 역사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금강 지류가 북쪽과 남쪽에서 흘러와서 나리진 부근에서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가는 모양을 유장하게 표현하였다. 부목군현은 옅은 노란색의 큰 원으로 표시되어 있고, 고현은 흑색의 작은 점으로 표시하여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경을 이루었으므로 지형의 높음과 낮음을 구별하지 않고, 많은 성들이 집중 분포하였다. 목사가 주재한 큰 고을인 청주 읍치의 위쪽에 보이는 상당산성은 석성으로 성안에 우물 열 둘을 가진 큰 성이었다. 그 좌측의 율봉역은 16개 역을 관장하는 큰 찰방역이었다. 각 읍치 사이의 거리를 비교적 정확하게 눈금으로 표시하였고, 역원, 점막, 고개, 나루터가 매우 상세하게 표시하고 있다. 읍치의 오른쪽에 보이는 椒水는 그 맛이 후추와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초정약수라고 부른다. 청주 서쪽의 작천 유역의 넓은 들이 지도에 잘 표현되어 있다. 백제의 도읍지이었던 공주 읍치 북쪽에 보이는 쌍수산성은 523년(성왕 1)에 웅진성을 수리한 것이다. 1603년(선조 36)에 수축하였는데, 1624년(인조 2) 이 괄의 난 때 인조가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온양 읍치의 위에 보이는 온양 행궁은 온천에 있으며 여러 임금이 머물고 갔던 곳이다. 온양 읍치의 아래에 위치한 시흥역은 찰방역으로서 7개 역을 거느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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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한 지도 입니다. 보이시죠? 청주
Posted by cjcfood